“일부지식인 친일개념 희석에 서구 ‘민족주의’ 개념 이용”

[경향신문 2005-02-02 19:57]



지난해 말 ‘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의 통과로 일제 강점기 친일파에 대한 진상 조사가 예정된 가운데 재일 역사학자가 국내 일부 지식인들의 ‘친일의식’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해 주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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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역사학자 윤건차 가나가와대 교수(61)는 ‘지식인의 친일의식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논문에서 “일부 지식인들이 서구산(産) 민족, 민족주의 개념을 빌려 ‘친일’ 개념과 범주를 희석시키고 있다”면서 국내 일부 지식인들의 친일의식을 문제삼았다. 이 논문은 3~4일 서울대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와 일상생활의 변화’라는 주제로 열리는 한국사회사학회 특별심포지엄에서 정식 발표될 예정이다. 재일교포 2세인 윤교수는 2000년 한국지식인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도표로 정리한 책 ‘현대 한국의 사상 흐름’을 펴내 화제를 낳았다.

윤교수가 이번 논문에서 겨냥한 ‘일부 지식인’ 그룹은 포스트모더니즘에 경도돼 있는 학자들. 그는 이 그룹으로 역사학자 윤해동, 임지현씨, 국문학자 김철 교수를 거론했다. 윤교수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프랑스 사상의 수용을 통해 포스트모던적 사고로 강하게 경도되어 갔던 것은 새로운 사고 방법의 획득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면서 “이들의 탈민족·탈국가적 사고는 냉정하고 엄정한 눈으로 과거 청산이나 친일파 비판을 바라보게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윤교수는 “민족과 국가를 지나치게 절대화해서는 안된다”거나 “사상이나 지식행위, 그리고 사람들의 고뇌에 찬 삶을 민족이나 국가로 재단해서는 안된다”며 ‘친일의 내적 논리’를 내세우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 일제 친일지식인들이 조선 내셔널리즘과 일본 내셔널리즘을 혼동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서정주, 채만식, 최정희 등 친일작가들이 일제 말기의 상황에서 내적 논리를 통해 자발적인 친일에 나아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친일의 내적 논리’란 역사의 구조 자체를 잘못 이해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친일은 단순한 일제에 대한 굴복이 아니라 일본 파시즘에 대한 굴복이며, 그 때문에 친일은 반민족적 행위일 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배신’이라는 게 윤교수의 주장이다.

윤교수는 “친일파의 문제는 일본과 조선, 종주국과 식민지라는 구체적인 관계성 속에서 다뤄져야 하고, 친일 문제 규명의 출발은 민족문제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비록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주장처럼 민족이나 국가가 애매하고 부적확한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역사의 구체적 국면에서는 상당부분 실체도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컨대 ‘친일파’가 존재한다는 것은 “일본이 패전하여 한반도에 새로운 민족국가가 수립되었다는 역사적 구조를 통해 사고된 것”이다. 또 그것은 제3세계의 해방과 독립에서 보듯 세계사적 보편성을 지닌 역사적 사실이라는 게 윤교수의 주장이다.

윤교수는 “한반도가 홋카이도나 오키나와처럼 일본의 지배지역이 되어 남아있다면 친일파에 대한 평가가 다르겠지만, 인류의 진보이자 세계의 보편적 흐름을 타고 민족국가로서 독립한 이상 과거 극복은 불가결하다”면서 친일청산의 불가피성을 내세웠다.

〈조운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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