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3.31.수요일

남가좌동

 

이태리 좌빨 안토니오 그람시의 경우

 

1926년 11월 5일. 슬슬 민둥 대갈빡에 염내가 돌기 시작하던 무솔리니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외피마저 제거하기 위해 일련의 긴급조치법을 국회에 제출한다. 파시즘의 칼바람이 턱 밑에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한 이탈리아 공산당은 당의 지도적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스위스 망명을 계획하게 된다. 그러나, 그람시는 망명을 거부한다.

 

그는 왜 망명을 거부했을까. 파시스트 블럭 내부의 모순을 과대평가한 판단착오가 첫째. 그람시는 이탈리아의 지배계급이 그 내적인 모순 때문에 아직 남아있던 일체의 반대세력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으리라 보았던 것이다. 결국 그는 국회 내 몇 안 되는 꼬뮤니스트 의원으로서 새 법안을 심의하는 권리를 행사하기로 결정한다. 

 

두번째 이유는 다음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선장은, 배가 난파되었을 때 자신의 배를 떠나는 최후의 사람이 되어야 하며 배를 탔던 모든 사람들이 무사하게 된 후에만 배를 떠날 수가 있다는 규범이 전해져 오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경우 선장은 배와함께 '침몰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보기만큼 그렇게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분명 선장이 자기 자신을 먼저 구하지 말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를 기초로 하여 국법을 만든다면, 선장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는 것을 무엇으로 보장할 것인가? 선장이 a. 난파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할 일을 다했으며 b. 일단 난파사고가 났을 때 인적, 물질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할 일을 다했다는 것을 무엇으로써 보장할 것인가? 오직 '절대적인 규범', 즉 난파사고가 났을 때 선장은 배를 떠나는 마지막 사람이 되어야 하며 배와 함께 죽을 수도 있다는 규범만이 그러한 것을 보장해 줄 수 있다. 그러한 규범 없이 집단적인 생활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없이는 아무도 자신의 생명을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 책무를 지거나 수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람시, <옥중수고 1>, P.97

 

 

그람시와 무솔리니. 그람시 석방과 구명을 위해 로망롤랑이 제작한 팜플릿. 어딜 가나 문어대가리가 문제다.

1926년 구속 수감된 그람시는 파시스트 법정으로부터 '20년 동안 저 사람의 두뇌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판결을 선고받은 뒤, 1937년, 형기도 다 채우지 못하고 사망한다.

 

 

 

칠레 좌빨 살바도르 아옌데의 경우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국영 라디오에서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맥락없는 멘트가 반복된다. 주술처럼 반복되던 갈 곳 없는 문장은 비극의 역사를 불러일으킨다. 산티아고에 뿌려진 비는 군부가 보내는 쿠데타 신호였다.

 

세계 최초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회주의 정부의 수반, 칠레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는 미국이 지원한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를 맞닥뜨린다. 망명을 권유하는 군부의 최후통첩을 거부한 그는 자신의 경호부대로 하여금 부녀자들을 이끌고 관저를 탈출하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방송을 남긴다.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계속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내가 이제 박해 받게 될 모든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내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내 생명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운명과 그 운명에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승리를 거둘 것이고, 곧 가로수 길들이 다시 개방되어 시민들이 걸어 다니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보다 나은 사회가 건설될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나의 희생을 극복해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는 사회변혁 행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이 방송은 그의 마지막 방송이 되었다. 몇몇 측근들과 함께 최후까지 항전을 벌이던 아옌데는 결국 카스트로가 선물한 AK47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총을 든 대통령의 최후 모습. 아옌데의 죽음에 대하여 여전히 자살설과 피살설이 대립하지만, 최근에는 자살설이 유력하다. 관심있는 분께는 쿠데타와 아옌데의 죽음을 그린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를 추천.


우리 조국의 경우


1950년 6월 26일 아침 8시. 국방장관이 방송에서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치고 북진 중에 있다’는 담화를 발표한다. 27일 새벽 1시에 드디어 비상국무회의에 이승만은 피난 준비 때문에 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 국방장관 신성모는 이 자리에서 ‘3~5일 이내에 평양을 점령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발언하고 이 이야기를 들은 국회는 만장일치로 서울 사수를 결정한다.


6월 27일 새벽 2시. 이승만은 각료는 물론, 국회의원, 육군본부에도 알리지 않고 대전으로 피난을 간다. 대전에 도착한 이승만은 ‘우리 국군이 적을 물리치고 있으니 국민과 공무원은 정부 발표를 믿고 동요하지 말며 대통령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서울을 지킬 것’이라는 담화를 녹음하고, 이는 27일부터 서울 중앙방송국에서 방송되기 시작한다.

 

6월 28일 새벽 2시. 군당국은 한강인도교를 사전 경고 없이 폭파하고, 한강을 건너던 피난민 수 백 명이 사망한다.


죽음은 평등하지 않다


죽음은 과연 평등할까. 재래 언론은 죽음에도 등급이 있다고 말한다. 재벌인 모 씨는 '별세'하시고, 노동자 모 씨는 '사망'했다고 한다. 그들의 죽음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는 없으되, 그들의 삶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인간이 지상에서 맞는 마지막 경험조차 평등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정육점에 진열된 고깃덩이가 종과 부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듯 생전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죽음에도 등급이 나뉜다.

 

죽음은 평등하지 않다. 평등하지 않다는 것은 평등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죽음은 고귀하지만 어떤 죽음은 이름조차 갖지 못한다. 남일당에서 나뒹군 여섯 구의 시체는 극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열사의 칭호을 얻었지만, 단지 그것 뿐이다.

 

월남전 이후 다카키 마사오는 상이병사에 대한 보상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국가유공자에 대한 이중배상을 금지하는 조항을 국가배상법에 쑤셔박는다. 당연히 이 조항은 위헌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결국 대법원은 이 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이 결정을 내린 대법관 9명 전원은 재임용에서 탈락하고(1차 사법파동), 위헌판결을 받은 이 조항은 유신헌법에서 헌법조항으로 승격되어 부활한다. 지금도 남아있는 이 조항(헌법 제29조 2항)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닥치고 뒈져라.'

이름 없는 죽음은 왜 죽어야 하는지 알아서는 안 되고, 죽고 나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고.

 

 

남일당.

 

 

20세기 이후, 전쟁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저 이름 없는 죽음 역시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만들었다. 20세기 이전까지 전쟁은 기본적으로 전선에 국한되었고 전투 행위의 직접적 피해가 후방에 미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군대뿐만 아니라 국가 행정기구와 국민경제 전체가 동원되는 총력전(total war)에서는 비전투원, 즉 민간인도 합법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다. 총력전에서 적에게 승리를 거두려면 적군뿐만 아니라 적국의 전쟁 수행 기구(war machine)도 무너뜨려야만 하기 때문에 전쟁 수행 노력(war effort)에 동원되는 민간인은 무기를 들지 않더라도 살상 대상이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1천만의 민간인과 8백만의 군인이 '별세'했다. 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 7-8천만 명중 군사 작전에 연루되어 죽은 이는 1/3이 채 되지 않았으며, 나머지는 민간인이거나 전쟁 포로였다. 양차 세계대전 동안 1억 명의 이름없는 무덤이 역사책에 새겨졌다. 1945년 이후 50여년 동안 2천4백만 명의 난민이 생겼으며, 전쟁을 피해 외국으로 탈출해서 삶의 근거지를 송두리째 잃은 사람도 1천8백만 명에 이른다. 함부르크와 드레스덴에서 하룻밤 사이 5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도쿄에서 민간인 10만명이 1945년 3월 9-10일 이틀 동안 B-29기 300대가 쏟아 부은 폭탄 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미군의 전략 폭격으로 독일 민간인 60만 명, 일본 민간인 9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히로시마에 단 한 차례 투여된 원폭 공격으로 희생된 사망자 수는 20만 명이다.

 

반면, 2차대전 참전국 대가리 중 전쟁을 통해 별세하신 분은 히틀러 뿐이다. 전쟁이 정치의 연장이라던 클라우제비츠의 명제가 타당하다고 할 때, 정치를 실제로 수행한 자들은 수 천만이 죽어나갔는데, 그 정치를 결정하고, 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이익을 얻거나 이익이 있다고 강변했던 이들은 거의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산수문제다. 누군가 더 죽어야 했었다는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저 통계상 죽음의 압도적인 불균형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죽음은, 평등하게 대우받지도 않을 뿐더러, 불균형하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대가리는 죽지 않는다. 꼬리가 잘린 도마뱀은 뒤뚱거리며 도망친다. 살아남은 도마뱀은 꼬리는 사라져도 대가리는 사라져선 안 된다고 항변한다. 대가리가 곧 도마뱀이고 도마뱀은 곧 대가리다. 국가는 대가리고, 대가리가 곧 국가다. 너희는 뒈져도 된다. 나는 뒈지면 안 된다. 니네가 뒈지면 나도 안타까워. 물에라도 쳐 뛰어들고 싶지만, 아 씨바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 나는 대가리거든.   

 

 

맛탱이 간 양대 대가리.


조국을 위해 죽기엔,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

 

천안함 사태는 저 유구한 퍼즐의 아주 작은 조각이다. 돈 없고 힘 없는 당신이 죽어야 할 이유, 죽어도 되는 이유는 아주 많다. 인간이 무리를 지어 살고 인간을 향해 돌칼을 휘두르기 시작한 이래로, 이 이유는 섬세하고 정치한 논리를 가지고 당신의 죽음을, 죽음의 불평등과 불균형을 정당화 해왔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죄의 정범이 된다. 다른 이를 시켜 누군가를 죽이게끔 한 자는 살인죄의 교사범이 된다. 그런데 다른 이를 시켜 수 백, 수 천을 살해한 자는 영웅적 지도자가 되어, 죽은 자들과 살인을 강요당했던 자들이 낸 세금을 받아 풍족한 노후를 누린다. 오바마의 노벨 평화상 수상과 뒤이은 아프가니스탄 증파는 극단적인 아이러니 아니던가.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지만, 수 천 명을 살해하면 정치가 된다.

 

조국은 그대를 잊지 않는다? 살인죄의 교사범이 피해자와 피교사범의 죽음을 잊지 않겠다고 한다. 잊지 않아줘서 고맙기 그지없다. 특히 대한민국이 내 조국이라면, 나는 이 조국이 고마운 나머지 이가 갈리고 피눈물이 날 지경이다. 20세기 내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죽음을 강요당해 왔던가. 조국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는 지배와 강요된 희생의 대전제에 불과하다. 저 허상 뒤에 숨은 자들, 자신들이 곧 조국이라고 믿는 자들의 기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허망하게 죽어갔던가.

 

그람시와 아옌데의 죽음이 숭고한 것은, 그들이 민중의 힘과 가치를 인지하고 그 해방을 지지한 정치 지도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역사에 남긴 유일한 가르침은 공동체의 지도자가 가진 권력은 철저한 자기희생을 전제하고 있음을 자기 삶을 통해 실증했다는 점이다. 그들이 짊어졌던 것은 이데올로기의 무게가 아닌, 그저 한 인간 몫 만큼의 생명의 무게였다. 그들은 불의에 맞서는 일에는 삶과 죽음이 평등하다는 점을 이야기헸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든 언제나처럼 죽은 것은 힘 없는 우리의 아들들이다. 우리의 위대한 조국은 저 죽음의 근본적인 원인제공자임에도 구조에서 확인까지 그 어떤 것도 분명하게 해내지 못했고, 그 어떤 것도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저들이 언젠가 이 '조국'이 '두 동강 나서', '침몰하고 있을 때', 그람시의 말처럼 최후까지 배 위에 남아 인적 손실을 최소화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인가. 역사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사병들은 죽고 함장과 장교들이 살아온 것을 비난하는 여론이 은밀하게 끓어오르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함장까지 함께 죽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 우리만 죽어왔고, 죽었으며, 앞으로도 죽어야만 하는지 이 땅의 모든 위정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 원치 않는 분단과, 원치 않는 전쟁과, 원치 않는 북방한계선과, 원치 않는 교전과, 원치 않는 죽음만이 왜 우리의 몫인지 묻고 싶은 것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조국을 목숨 바쳐 지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왜 우리는 누군가는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원치 않아도 타의에 의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가. 죽임을 강요하고 죽음을 방기하는 지도자로부터, 국가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지도받고 어떻게 보호받아야 하는가. 삶이 평등하지 않다면, 죽음만이라도 평등하기를 바라는 것이 그토록 큰 희망인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공동체를 거부할 수 없다면, 적어도 그 공동체가 최소한의 양심과 상식을 향해 움직이기를 바라는 것이 그토록 큰 바람인가. 더 이상 개 쓰레기만도 못한 조국과 이데올로기에 젊음을 바치는 이들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그저 망상인가.

 

죽은 이들은 말이 없다. 지금까지 말 없이 죽어간 이들에게 그러했듯, 조국은 저들의 죽음의 자신의 이름을 붙일 것이다. 저들은 조국을 위해 죽었노라고. 조국은 당신들의 희생을 기억할 거라고.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을 향해 말할 것이다. 자, 너희들도 쟤네처럼 죽어라. 국립묘지에 묻어줄께. 좋지?

 

씨바. 조국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거절한다, 씹새야. 조국 같은 거 다 족구하라 그래.

단체로 족구나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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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ishing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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